한진섭이 다루는 작품의 주제는 주로 인간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어느새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마음의 고향을 찾은 듯하다. 한진섭은 딱딱하고 차가운 돌에 생명을 불어넣는 예술의 창조자이다. 그의 작품에는 포근함과 다정함이 있으며, 해학과 유머가 있다. 그의 작품은 또한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소박하며 때묻지 않은 영혼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다. 한진섭이 이 같은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은 작가 자신이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이며, 아울러 그에게 돌이라는 재료를 완벽하게 다룰 수 있는 기술적 밑바탕이 있기에 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진섭이 분당성요한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제대와 강론대, 독서대 등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그가 돌이라는 재료를 일관되게 다루면서 터득한 나름의 기법과 예술세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족한 재능이지만 하느님께 그것을 봉헌하고자 하는 정성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일방적으로 주장하기보다는 작품의 주제와 형태를 신부님과 상의하면서 성당에서 필요로 하는 작품을 만든다는 자세로 제작에 임하였다. 성 미술이란 감상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신자들이 그것을 통해 하느님과 가까이 할 수 있는 매체이어야 한다는 것을 이 작가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시기까지 하신 예수님, 예정된 대로 할 바를 다 이루고 이제 천상에 오르실 예수님, 우리와 함께 지내시며 욕심과 권력과 억압, 분쟁 등 고통받는 우리들의 뒤엉킨 삶의 모순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신 예수님, 모든 것 훌훌 털고 우리를 뒤로 한 채 그냥 떠나가실 수 없는 예수님의 심정과 마지막 순간 우리에게 남기시는 위로와 다짐의 말씀, 눈물로 용서하시고 우리로 인한 엄청난 고통을 기꺼이 견뎌내신 예수님, 우리에게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신 하느님의 아들. 나는 그러한 모습을 나타내려고 노력하였다.
십자가는 고통과 희생의 상징이다. 어둡고 장중한 십자가로부터 무중력처럼 떠오르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연출하였다. 십자가의 외각에는 우리 인간을 상징하는 양의 모습을 불의 모양으로 도형화하여 새겨 넣고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 돌아가심’ 중 4개의 장면을 부조로 조각하여 십자가의 상하좌우에 각각 배치하였다. '상'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내리는 모습, '좌'에는 마리아와 '우'에는 제자 성 요한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감실 모형작업에서 한국적 조형기법을 활용한 모던한 디자인의 모형 안을 제시도 하였으나, 김 신부님의 확고한 감실 외형에 대한 주관은 나의 생각을 접게 하였다. 따라서 감실 외관은 성당의 원형에 충실하였으며 기능적으로 문과 좌우측면은 안정감을 주기 위해 다소 간략하게 바꾸었다. 감실 제대는 좌우측면에서 보면 성작 2개가 다리가 되어 제대 윗판을 받치고 있다. 성체등에는 불꽃이 7개씩으로 정면과 좌우에 뚫었고, 종탑 지붕을 들어 올리면 전등을 쉽게 교환 할 수 있다. 장미의 창은 실물의 축소형으로 정면, 좌우 측면과 정면 문을 열었을 때 같은 위치에 한 개의 창이 또 나타나 문을 열고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게 하였다.
형태 제작은 주조와 조각기법으로 표면의 창문은 칠보, 지붕은 녹색 착색, 벽면은 유화가리 착색을 하였다. 주 재질은 브론즈와 은(92.5%)을 사용하였다. 성당 외벽은 화강석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은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IMF란 상황과 주위의 의식으로 그렇게 못하고 갈색 조색을 나타냈는데 이 색조는 점차 사용할수록 무게 있는 색감으로 안정감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가 완성되지 않아 스테인드글라스와 비슷한 창문 색을 표현하지 못한 점이다. 그리고 감실에 적절한 조명 처리가 된다면 지성소에서 감실의 성스러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생활 양식이 점차 변화되어 서양의 지성소에서와 같이 의자에 앉아 기도 드릴 때에도 감실 크기와 제대의 눈높이가 적절하여 더욱 친근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죄의 죽음에서 생명의 삶으로 나아가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고해성사가 컴컴하고 답답한 곳에서 통회하고 화해하는 아름다운 장소라는 생각보다 죄지은 이의 부끄러움만을 배려한 탓일까 아니면 건축하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적인 개념 탓일까. 냉담하는 이들의 많은 수가 고해를 미루다가 교회를 멀리하게 된다고 한다. 또한 어린이들에게 다정한 모습 고해소를 보여줄 수 있다면 신앙을 키워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성당 안의 제일 중요한 부분이 제단인 만큼 제단과 잘 조화를 이루자면 건축 외형과 내부 형태와도 조화를 이루는 그런 형태를 생각해야 했다. 반원형 아치가 많이 사용된 건축인 만큼 고해소에도 아치형을 도입해 보았다. 성령도 표현하고 싶었다. 또한 문 앞에 선 사람들이 자신들의 내부를 향하여야 깊은 성찰을 할 수 있을 것이니 과도한 시각적인 자극은 피해 보도록 하였다. 가운데 신부님이 사용하시는 방에는 십자가형으로 색유리를 박아 기능적으로는 성사를 주고 계신지 아닌지 알 수 있게 하였으나 그 뜻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었음을 나타내 보았다.
고해소의 위쪽에는 전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성령의 표시인 비둘기 형상을 만들어 주어 성령께서 함께하여 주시고 계심을 알리고 사람들이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성사를 볼 수 있게 돕고 싶었다. 요한성당의 고해소도 상당히 어두운 부분에 자리하게 설계되었기에 금과 은을 같이 사용하여 최대한 은은하고도 화려한 빛을 반사하게 하였다.
대성당 3층의 고해소는 예수님 수난과 부활을, 4층에는 탄생과 승천을 묵상하였다.
남향의 햇빛은 매우 강렬하기 때문에, 특히 주일 11시 미사 시간에는 더욱 그러하기에 나는 창의 주요색으로 강렬한 빛을 완화시키며 내향성을 제공하는 파란색을 선택하였다. 밑에서 위를 향하고자 애쓰는 나뭇가지와 비슷하게 생명나무의 상징이 이 창에서 시사되어 있다. 설날 전에 북쪽 하늘의 문이 완성되어 황금빛의 따뜻한 색채가 발산되고 있다. 나는 북쪽으로부터는 거의 햇빛이 들지 않기 때문에 황금색과 갈색으로 채색된 유리를 택하였고, 가장자리는 대비색으로 차가운 느낌의 은회색을 사용하였다.
이 창들 밑부분의 그물 모양의 선들 속에서 십자가 형상을 볼 수 있다. 십자가는 예로부터 생명나무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지만, 나에게는 그 외에도 어린 양이 그 빛의 원천인 천상 예루살렘을 생각하게 한다.
"어린 양이 바로 그 도성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 도성에는 태양이나 달이 비칠 필요가 없습니다."(요한묵시록 21, 23)
고딕풍의 대성당 내부에 있는 장미창 Roselientenger은 그 특수함으로 하느님의 엄위하심을 상징하고자 했다.
"영광의 임금님이 누구이신고? 굳세고 능하신 하느님이시다…. 마라나타, 주님 오소서!
또한 장미창은 세상의 수레바퀴로 해석될 수 있다. 아래층 좌석과 성가대석에서는 이 창들의 많은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바깥 면으로 창문 구성의 방해물이 보이는 것은 벽이 바로 그 뒤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장소를 전체 건축물에 일치시키기 위하여 장식적인 불투명유리로 작업하였다.
중세 유럽에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도 그 재현이 계속 시도되고 있는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께서 이 지상에 생존하시며 그를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수 많은 사람들과 생활하시는 중에 마지막으로 걸어가신 고난의 발자취이다. 무릇 교회는 이 마지막 '길'을 14처로 나누어 신자들로 하여금 깊이 묵상케 함으로써 주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하고 회개와 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를 형상화해 왔다.
분당성요한성당에서도 우리 신자들이 이 '길'을 통하여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묵상과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14처의 고난상을 봉헌하되, 사실적 부조로서 형상화함을 원칙으로 하고 내게 그 제작을 의뢰하였다. 제작에 앞서 나는 부조가 걸릴 성당의 본당을 답사했다. 작품의 크기와 색조 그리고 전체적 형태는 현장 분위기의 기성 조건에 의해 결정되었다. 특히 작품 상단의 아치형은 종교적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선택된 것이다. 나는 작품 스케치에 시간과 공을 들였고, 많은 묵상의 시간을 가졌다. 특히 14처 관련 자료의 수집과 고증에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완성된 스케치를 면밀하게 검토하신 김 요한 신부님은 단지 예수께서 비만하시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유념할 것을 지적한 것 이외에는 대체로 수긍의 뜻을 표하시며 작품의 신속한 제작을 요청하셨다.
최초로 착수한 작품은 제3처(예수, 기진하여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였다. 나는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진리는 영원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가장 힘들었던 작품은 제12처(예수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로서 애초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전신상을 시도하다 보니 주님의 얼굴이 너무 작아져 죽음의 고요함과 귀천의 안식감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 결국 시행착오를 수없이 되풀이한 끝에 상반신 중 얼굴 부위를 보다 강조한 지금의 형태로 낙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