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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게시판 Youth Board
로고스 매일복음묵상 [부활 제6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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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6.05.08

<규칙>
- 단톡방 안에서 매일복음과 묵상나눔 이외의 사담은 금하고 있어요.
- 단톡방을 나가고 들어오는 것은 언제든 자유입니다. 
분당성요한 청년이라면 누구든지 초대 가능합니다. 
(로고스 대표봉사자에게 문의해주세요)


<로고스 매일복음묵상 나눔방입니다.>
1.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신 분께서 그날의 복음을 올려주세요.
2. 오늘의 복음을 마음에 새기며 하루를 알차게 보냅니다.
3. 하루 동안 복음을 통해 내 삶에서 드러나신 하느님을 

자유롭게 나누어 주시고, "사랑합니다"로 마무리해주세요.)
4. "행복합니다"는 마음속으로 답해주세요.






[5월 1일 (일) 부활 제6주일]

이틀동안 개인적인 일로 휴지 한통을 다 써서 울었어요. 기도를 할수록 마음에 산란해지고 말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내가 지고 가야 할 짐이 너무 크다고 여겨져서 몇 시간을 울었어요. 말할 곳이 전혀 없다고, 위로 받을 곳이 없다고 느껴질 때에 오늘 마르코 파견미사를 가게 되었어요. 연수 보낸 분들을 위해 기도한번 할 생각도 못하고 영성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까지 가지고 참 부끄럽게 미사에 참례하였습니다.

 

"사랑한다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내 딸아 내가 네게 축복 더 하노라." 이 성가의 가사를 들으며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앞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청년들의 환한 얼굴을, 성체를 나눠 모시는 모습을, 성령이 가득한 그 순간순간들을요. 그 분이 주시는 평화란 늘 그 자리에 온전히 채워져 있습니다. 눈을 뜨고 고개를 들기만 하면 그 자리에 늘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기들을 키울 때 엄마와 떨어져 있기 싫어하는 분리불안을 훈련하려면 갑자기 사라지기보다는 엄마가 잠시 갔다가 다시 올거야 하고 가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기들은 엄마가 눈 앞에 없어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있다고 인식할 수 있게 된다고 해요.

오늘 복음에서는 부족한 제자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예수님의 마음이 마치 아기를 두고 떠나는 엄마의 마음과 같이 느껴집니다. 제자들을 떠나시기 전에 신신당부를 하십니다. 내가 지금은 잠시 너희들을 떠나지만 곧 성령께서 오실 것이니 내가 없는 그 순간에도 마음이 산란해지지 말아라.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서로 사랑하여라, 사랑하여라.

 

눈을 뜨고 고개를 들기만 하면 온전한 평화인데 사랑하기 싫어서, 나를 내려놓는 것이 억울해서 하느님 말씀을 멀리하였습니다. 성령께서 오시어 제가 언제나 사랑을 택하도록 도와주시기를 청합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잠시 떠나시는 그 순간에도 산란해지거나 겁내지 말아야겠습니다.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사랑합니다. :)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요 근래 10일 이상 말씀 묵상도 제대로 되지 않거니와 여러모로 심리적으로도 조금 안정되지 않아서 말씀을 기계적으로만 읽는데 그쳤어요. 묵상이 되지 않을지언정, 독서와 복음말씀을 읽고 제가 책에서 읽었던 누구에게서 들었던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로 말씀을 보며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오늘 말씀을 펼쳤더니 1독서의 말미에 위와 같은 말씀이 나오더라고요.

 

오늘 1독서의 도입은 지난 부활 5주간 수요일 1독서와 동일합니다. 그 때 독서의 말씀은 할례에 대해 유다계 그리스도인과 비유다계 그리스도 인이 논쟁하는 내용이었고 복음 말씀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이해한 것으로는 "가지인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온전히 머물지 못하면 가지가 잘려나가거나 부러져 떨어질 것인데, 할례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셨을지를 생각해보자"로 요약이 됩니다.

 

오늘 독서에서 같은 사도행전의 말씀이지만 뒷부분의 말씀을 들려주는 것도 왠지 저에게는 적어도 같은 말씀을 한 번 더 하지만 명확하게 상기시켜주시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도들과 사도들이 뽑은 형제들을 보낸 것은 아마도 성령에 힘입어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라는 말로 대변되는 주님의 뜻을 명확히 전달하고자 한 의도였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다가 오히려 제 자신을 제 생각이나 잣대로 옭아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아마 묵상이 안되어서 어거지로 해보겠다고 한 것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냥 일상 양식인 주님의 말씀을 읽고 그 분께서 알려주시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곧 자연스러운 묵상일 것이고 제 일상의 샘물이 되는 것인데, 안된다고 물이 나오지도 않을 땅에 물이 나오라고 우물을 파대고 있으니, 결국 성령께서 지우시지도 않은 짐을 제 스스로가 지우는 격이겠지요.

 

이 모든 것, 과연 내가 포도나무인 주님에게 잘 머무르느냐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의 복음에 빗대어 보면,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감사한 것은 "성령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결국 당신께서 저에게 해주셨던 것들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정신을 차리게 해주셨다는 것 같아요. 특히 저도 오늘 오랜만에 마르코 파견을 보면서 그런 걸 느낀 것 같아요. 미약하지만 마르코 연수를 거치며 경험했던 나의 부활은 무엇이고, 내가 어떻게 신앙생활의 힘을 다시 얻었는지를 상기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산란할 수 있을 마음이지만 예수님 말씀처럼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어야 할 것 같아요, 아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죠.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켜라.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는 다른 보호자를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

 

늘 제 곁에, 우리 곁에 보호자이신 주님 당신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멘.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별은 너무나 힘든일인것 같습니다.

특히나 사별은 더욱더 그렇지요

저도 오늘 연수의 파견미사를 다녀왔습니다.

언젠가부터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때는 가슴한켠에선 슬퍼지는 마음이 생기는것은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가신다고 말씀하심은.. 내 모든것이 무너져내립니다.

그래서였던것 같습니다.

 

우린 언젠가는 모두 이별을 하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가족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친구 모두에게 이별을 고할날이 올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슬플때 함께 울고

기쁠때 함께 웃고

아플때 찾아가 함께 해주고

함께 먹고 함께보고 함께느꼇던 이들과 헤어지는 일

 

다시 만난다는것..

믿음이 없었던 몇개월되지 않는 지난날의 저에겐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감상적인것일까요?

그저 기적을 바라는 저의 마음일까요?

아니면 제가 넋을 놓고 살아가는 것일까요?

 

단 한줌의 믿음도 없던 제게 믿음을 심어 주신건

제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모두 다시만날것을 믿습니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고

표징이 아니었고

보이지 않는 그 어떤 무엇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 앞에 일어난 현실이었고 제가 보았던 모든 것 이었습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5월 2일 (월)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예수님의 삶은 그 자체로 진리를 증언한 것이었기에, 사랑을 완성하신 죽음의 때에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할 것이다"고 당당히 말하실 수 있었습니다.

오롯한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면 정말 할말이 없어집니다. 사랑합니다 고마웠어요 같이 정말로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밖에는요.

나 자신의 죽음 목전에서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어떤 죽음일 수 있을까. 반대로 말하면 어떤 삶일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감히 예수님을 증언하는 아름다운 삶이기를 기도합니다.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사랑합니다. :)

 



한동안 평화롭던 마음에 최근 본 영화 시빌워의 주인공들처럼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내신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의지해볼렵니다. 지금의 분열이 제 마음을 흔들고 어지럽히겠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잘 다독이고 성찰하고 정리하여 한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새로운 마음으로 다녀온 연수.

소중한 힘들이 모여 저를 응원해주셨고 주님의 부르심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녀와서의 실천이 가장 중요한데..일상에 돌아온 저는 또 되풀이되는 상황과 제 언행에 좀 슬펐지만 감사하게도 그 순간을 침착하게 정리했고 주님의 포근한 품이 느껴졌습니다 앞으로도 순간순간이 넘어야할 것들이 많겠지만 소중한 힘을 주셨던 분들을 기억하며("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의 노랫말처럼)

또 한걸음 한걸음 주님 앞에 함께 나아가려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 힘 또한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멘





[5월 3일 (화)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입맛이 아주 까다로운 사람이 중국식당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주문을 받으러 온 여직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짜장면 하나 주세요. 그런데 면 두께는 0.2mm, 춘장은 5년 묵은 것, 고기는 약간 부드럽게, 야채는 농약을 전혀 쓰지 않은 유기농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면은 정확하게 5분을 삶아주십시오.”

 

이렇게 말하는 손님의 주문을 들은 여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주방에 대고 한마디 했습니다.

 

“여기 홀에 짜장면 하나!”

 

복잡하게 말했지만 결국은 짜장면 하나 주문한 것이지요. 그리고 여직원은 그 핵심을 알고 있었기에, 복잡한 주문을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복잡한가 싶습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들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삶 안에서도 핵심이 있습니다. 그 핵심을 짚어서 살아간다면 보다 편하게, 그리고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요. 부정적인 생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분명히 틀렸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면서 그냥 따라하며 불평불만이 가득합니다. 성급하게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는 오류 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밖에도 삶을 복잡하게 생각하면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즉,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 이 사실에 근거해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계속해서 주신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부정적인 시각보다는 긍정적인 시각을 갖출 수가 있으며, 조금 더 신중하고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갖출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필립보가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주님을 따르면서 많이 불안하기도 했겠지요. 아직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의 확신을 위해서 하느님 아버지를 직접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께서는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라고 말씀해주시지요. 아버지와 주님께서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부족하면 복잡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안하고 힘들었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여러 가지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돌게 됩니다. 그리고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냥 그 자체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과 하느님이 하나라고 하시면서 단순하게 해주셨습니다. 이로써 더욱 더 쉽게 구원의 길로 갈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아주 작은 움직임도 그 안에는 수천 번의 노력이 있다(맹자).

 

선택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좋은 선택은 옳은 것을 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좋은 선택은 잘못된 일을 하는 것이며, 가장 안 좋은 선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들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요? 혹시 고민에 빠져서 계속 결정을 미루는 가장 안 좋은 선택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선택하는 것입니다. 선택을 하면 우선 중간이라도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조명연마태오신부님-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을 제외하고 사랑이 없는 전지전능한 신을 상상할수록 그 신은 논리적 오류에 빠지게 되어 있어요. 사람들이 흔히 '신이 있다면 왜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왜 고통받고 힘들어하고 아파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하는데, 하느님은 우리가 행하는 자유 안에서만 전지전능하시지 우리에게 준 자유의지를 침해하는 만큼 전지전능하지 않아요. "지배하는 사랑" 그런 말이 논리적으로 가능한가요? 결국 하느님의 전능함이란 곧 사랑의 전능함이에요. 무신론자들이 신에 대해 오해를 해서 오류에 빠지는 건 그런 이유에요."

*

언젠가 무신론자였던 분과 주고 받았던 글이에요. 저 대화를 통해서 "사랑이신 하느님"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어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삶과 죽음으로써 그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우리는 사랑을 줄 때조차 무언가를 받습니다. 분명히 퍼주고 있는데도 쉼없이 가득 채워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도처에서 오는 그 충만함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그래서 사랑 안에 머무를수록 점점 더 하느님의 실재에 대해 확신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사랑합니다. :)






[5월 4일 (수)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사람이 창조될 때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코에 당신의 숨을 불어 넣으셨다고 합니다. 어느 신부님께서 "그렇기에 하느님이 없으면 사람은 살덩이, 흙먼지에 불과하다"라고 이야기 해주셨던게 기억이 납니다. 사람이 하느님에게 등을 돌려 에덴 동산에서 쫓겨 나오고, 다시는 에덴 동산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하느님을 갈망하는 존재일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그분께서는 또 한 사람에게서 온 인류를 만드시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일정한 절기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그 분께서는 우리와 항상 가까이 계시기에 가죽옷을 입혀 주시고, 우리의 어려움을 듣고 기억하시며, 우리와 계약을 맺어주시며, 당신의 외아드님까지 보내주시는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의 뜻을 읽어내고 따르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분의 이끄심이 있기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경험하고, 생각해보지도 않은 길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고민의 과정이 곧 진리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진리의 영께서 이끌어주시는대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청하면서 자기 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신음하다가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고 나서야 "아 이런 이유로 하느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구나" 깨닫게 되곤 합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몇 번 하고 성경을 보니 아브라함 이래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이런 하느님의 섭리를 체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에는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도 아주아주 나중에서야,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약의 숨겨져 있던 의미가 온전히 드러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삶의 어떤 때에 이르면, 힘들고 혼란했던 모든 순간들이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다 필요했었다고 말하게 될 거라고요.

가만히 주님께 제 삶을 내어 맡깁니다. 움켜쥐려는 교만과 두려움까지 내어놓고 싶습니다. 삶이 표류한다고 느껴질 때에 주님 말씀 듣기를 청합니다. 십자가만이 제 삶의 이정표입니다.

*

과거는 하느님의 자비에,

현재는 당신의 사랑에,

미래는 하느님의 섭리에 맡겨라.

- 성 아우구스티노.

*

사랑합니다. :)

 





[5월 5일 (목)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 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3년째 학습 봉사를 하고 있는 장애인센터에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언니가 있어요. 언니는 가끔 저에게 남들에게는 한번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얼굴 근육을 겨우 움직여 고해성사를 하듯 품고 있던 속내를 내비칠 때마다 저 속에 저렇게 끔찍하게 깊은 바다가 있구나 어림하고는 합니다. 가끔은 어떤 말이 쏟아져 나올지 몰라 겁이 나서 더 묻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런 날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언니가 16년째 지내고 있다는 그 방안의 적막과 16년을 바라봤을 하얗기만 한 천장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럴 때마다 불쑥, 언니를 더 사랑하게 됩니다.

 

감히 어떤 말로 언니를 달래줄 수 있을까요. 딱 한번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언니야, 언니는 하느님께 가는 문이야. 언니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 품에 들 수 있어. 그런 이유로 언니를 이 세상에 보내신 거야." 언니는 더 답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까닭으로 어떤이의 광야는 더 적막하고 끝도없이 황폐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온전하신 그분께서 어떤 방식으로든 모두 갚아주시리라 믿고 싶습니다. 골고타 길에서의 지난한 침묵을 생각합니다. 절망을 뚫고 난 그 길이 구원의 길임을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바오로는 예수님을 직접 보지는 못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바오로는 예수님을 보고 회심하여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다닙니다. 세상이 기뻐할 것이고, 근심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 때문일 수도 있고, 회심한 바오로의 모습 때문일 수도 있고(결국 같은 것이겠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납니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역시 2천년 전 예수님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그 예수님을 만난 경험을 하고 바오로처럼 부활한 삶, 주님의 길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나는 부활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말씀이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해주시니, 여러 생각과 감정이 들어도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다시 오리니, 너희 마음이 기뻐하리라."

 

아멘.





[5월 6일 (금) 부활 제6주간 금요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 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예수님께선 당신께서 떠나가신후 애통해할 저희에게 말씀해주십니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저는 가장 사랑하는 분을 이 세상에서 떠나보낼 때 애통하다는 표현.. 보다는 직후에 저는 모든 상황을 부정하는 저의 모습을 볼수있었습니다. 극한의 상태에선 눈물도 나지 않는다는 표현이 너무나 가슴에 새겨지기도 했습니다. 같은 장소에 있지만 분명히 다른세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선 오늘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떠나가신 후 애통하고 근심할 저희에게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것이다. 말씀해주십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씩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죄의 유혹에 빠지며 이기적이고 악한마음을 품기도 하며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하고 이웃을 마음으로 욕하며 저주하기도합니다.  

편한일만을 찾고 배불리먹으며

저에게 좋은 사람만을 찾고,

 기도를 소흘히 하며 저의 기도만을 늘어놓습니다. 그럼에도 무엇이 부족하여 또 다시 주님앞에 무릎꿇고 청하고 또 의탁합니다.

                                        

그러다

 

상처와 아픔으로 주님을 찾고  

 

눈물흘리는 사람에게   

 

당신께선 모두 버리십니다.

 

 

 

 

진심으로 제 자신에게 주님을 사랑할자격이 있는지 묻습니다. 

 

진심으로 제 자신에게 주님을 사랑하는지 묻습니다.

 

 

저의 근심이 기쁨으로 바뀌기를 바랄 자격이 있는지 묻습니다.     

 

주님께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지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주님앞에 무릎꿇고 눈물흘릴 자격조차 없다는것을 알면서도 다시 눈물의 기도를 드리며 자비를 청합니다.  

 

주님께 제 모든걸 드립니다.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이 구절을 읽고 성모님을 떠올렸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의 전언에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셨지요. 하느님께서 주신 것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모님의 부드러운 강인함에 늘 감탄합니다.

 

그리고 로고스 봄학기 개강할 때 봉사자분들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

임원진과 그룹을 나누면서 제일 처음에 기도부터 하고 시작했어요. 그룹나눔을 하다 보면 우연히 모인 그룹원들이 얼마나 조화롭고 신비한 무늬를 이끌어 내시는지요. 그래서 다 하느님의 뜻이니 우리가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 말고 하느님의 뜻대로 그룹을 나누게 해달라고 기도부터 했지요.

그래서 어제도 서로 어색해하는 그룹원들을 보면서 이 작은 씨앗들이 어떤 풍성한 열매를 맺을지, 얼마나 튼튼한 나무를 키워내실지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보았지요.

 

그룹성경공부의 시작은 내게 주어진 그룹원을, 그룹봉사자를 받아들이는 일로부터 시작하나 봅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대로, 내가 원하는 사람과 함께 하려고 이렇게 저렇게 수를 써보지만 그렇게 도망간 저편에서도 또 다른 난관을 마주하고 또다른 피하고 싶은 무언가를 만나게 되더라고요. 주어진 모든 상황을 긍정하는 만남! 그렇게 '나'를 하나 덜어내는 과정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어요. 오늘은 내게 주신 모든 그룹원을 다 받아들이는 용기와 지혜를 청하며... 2016/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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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 기뻐합시다.

 

사랑합니다. :)






[5월 7일(토)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무언가 우리에게 섭섭해하시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나는 너희가 청하는 것을 언제든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데... 왜 나에게 청하지 않니? 청하기만 하면 받을 텐데... 너희의 기쁨이 나의 기쁨인데...' 이런 마음이랄까요.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간청하고 계십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니?"

 

"하느님은 전능하시지만, 그분의 힘은 힘의 사용을 거부하는 데 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계시다. 강한 것은 사랑이다. 또한 정확하게 말해서, 사랑의 힘은 말 그대로 힘의 포기다. 힘을 포기하는 이는 명령하지 않는다. 그는 간청한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간청하신다.

... 하느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딱 한 가지뿐이다. '너의 형편없음에서 벗어나라, 망가지지 마라, 가장 높은 인간적 차원에 도달하라!' 이것이 그분의 소원이고, 복음의 전부다."

- 프랑수아 바리용, <흔들리지 않는 신앙>에서.

 

사랑합니다. :)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겪고있는 불안과 고통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실까.

찾아가 기도해보고

애처럼 눈물도 났지만

가끔 이런 저에게 정말 주님께서

제 마음을 아실까, 듣고계실까 하는

생각들이 든 적도 있습니다.

 

어떤 날은

특별히 기도를 하지않고

그저 앞에앉아서 가만히 제 마음을

알아봐달란듯이 침묵하고 있어도

어떨땐 저를 위해, 아니면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드릴때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한결같이

제게 침묵으로 모든걸 답하십니다

아무소리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가만히 저를 다시한번 겸손하게 하시고 살아내는 힘을 주시는걸 압니다. 알수없지만 그것마저

저를 위한 작은위로라 믿고 싶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제가 주님의 사람인것을

잃어버리지않고 잊지않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계신다는 걸 느꼈을 때부터 듣고 계시면서 왜 그러세요 하고 수없이 억울해 했습니다. 들어주신다고 사랑하신다고 했으면서.

 

문득 벽을 치고 울며 떼를 쓰는 것까지 허락해주시는 주님께 감사한 마음이 솟아 오릅니다. 언제든 돌아와 기도해도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절 평화롭게 합니다.

 

저는 주님의 뜻을 다 알 수 없어서 무서워 하지만. 사랑이신 예수님께선 모르는 길까지 따라가고 싶게 만드십니다. 주님께서 제 삶에 함께하신다는 걸 알게 되어서 행복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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