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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게시판 Youth Board
로고스 매일복음묵상 [부활 제5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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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6.05.02

<규칙>
- 단톡방 안에서 매일복음과 묵상나눔 이외의 사담은 금하고 있어요.
- 단톡방을 나가고 들어오는 것은 언제든 자유입니다. 
분당성요한 청년이라면 누구든지 초대 가능합니다. 
(로고스 대표봉사자에게 문의해주세요)


<로고스 매일복음묵상 나눔방입니다.>
1.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신 분께서 그날의 복음을 올려주세요.
2. 오늘의 복음을 마음에 새기며 하루를 알차게 보냅니다.
3. 하루 동안 복음을 통해 내 삶에서 드러나신 하느님을 

자유롭게 나누어 주시고, "사랑합니다"로 마무리해주세요.)
4. "행복합니다"는 마음속으로 답해주세요.





[4월 24일 (일) 부활 제5주일]

오늘 지나가다 소성전에 잠시 들렀는데 어떤 자매님이 맨 앞자리에 혼자 앉아서 울고 계시더라고요. 조용히 돌아 나오는데 맞은편에 붙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늘 2독서 말씀이었어요.

저도 소성전 맨 앞자리에서 그렇게 울어본 적이 있어요. 어느날은 정말 통곡을 하고 있는데 먼저 와서 기도하시던 자매님이 조용히 나가시더라고요. 한참을 실컷 울고 밖으로 나왔는데 그 자매님께서 밖에서 저랑 같이 울고 계셨어요. 이름도 모르는 그 자매님이 우는 걸 보는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요한 11,35)는 구절을 떠올랐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함께 운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함께 울어주신다는 것만큼 위로가 되는 건 없었습니다.


나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계명을 영영 못알아먹을 것 같으셨나보다 하는 생각을 요즘 합니다. 제 시련이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한 밑바탕이 되리라 믿습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마다 사랑이기를, 그렇게 늘 새하늘 새땅이기를... 예수님께 의탁합니다.


사랑합니다.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유다는 예수님의 수난을 불러오지만, 그런 유다를 예수님께서는 보내십니다. 예수님이라면 아마도 끝까지 유다를 사랑하셨을 것 같아요. 전교 여행을 하면서 역시 환난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오히려 하느님 말씀에 의지하며 세상 모든 이에게 사랑을 베풉니다.


십자가를 만들기 위한 시작은 순종이었고, 십자가를 완성한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순종이라는 것도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나를 위하는 하느님을 위한 것이니 결국은 사랑이겠지요. 결국 시작과 완성 모두 사랑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랑이 부활의 문을 열었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듭니다.


말처럼 쉬우면 좋겠지만, 사도들은 환난을 겪었으며 저 역시 환난을 겪습니다. 사도들의 환난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제가 겪는 환난은 적어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거기에서 오는 괴로움에서 오는 환난이겠지요. 또한 저는, 물론 전보다는 낫지만, 아직까지도 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고 어려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남들이 느끼기에도 아마 주님께서 바라신 사랑이 부족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 모습조차 보시기에 좋기를 기대하며 받아주시기에 참으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러한 저의 모습에서 어쩌면 주님의 사랑은 더욱 꿈틀대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마치 2천년의 굴곡진 역사 안에서 주님의 영이 살아 숨쉬는 것처럼 말이죠. 주님께서는 죽음과 부활을 통해 저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고, 더하여 매번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여주십니다. 거기서 오는 기쁨과 감사함 때문에 저도 더욱 당신의 모상을 닮아가고 싶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처럼 사랑하고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 있었던, 오랜만에 시작한 그룹모임에서도, 저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주신 계명을 완성해 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고, 당신 안에 더욱 머무르는 제가 그리고 저의 한 주가 될 수 있기를 청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사랑합니다.

아멘.




[4월 25일 (월)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 조 두레박 신부의 영적일기(부활5-월)


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천주교 요리문답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천주교 요리문답”은 1967년『가톨릭교리서』가 나오기 전까지 33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의 대표적인 공식 교리서로서 인정받았습니다.


요리 문답에 첫 번째 문항이 이것입니다.

문)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났느뇨?

답) 사람이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救)하기 위하여 세상에 났느니라.


요리 문답에 이 사람은 “살아내는 사람” 일까요? 아니면 “사는 사람”일까요?


어느 글에...

첫째로 “살아내는 사람”은 그저 다가온 일들이나 문제들을 하기에 급급하고 주어진 일이니까? 문제이니까? 억지로 꾸역꾸역하는 수동적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매일 매일 맥 빠진 인생입니다.


반대로, “사는 사람”은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기쁘게 하는 능동적인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매일 매일 샘솟는 사람입니다.


꾸역꾸역 살아내는 사람은 이웃도 맥 빠지게 하지만, 샘이 솟듯 사는 사람은 이웃도 살립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여인과 이야기 하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매일 매일 삶을 겨우 살아내던 사람이...예수님을 만나 말씀이 들어가면서 자신도 살고, 이웃도 살리는 생명의 사람이 됩니다.


  요한복음 4장28-30절에 보면...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고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그리하여 그들이 고을에서 나와 예수님께 모여왔다.”

☞ 이렇게 매일 매일을 살아내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말씀을 들을 때에...매일 매일을 기쁘게 사는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 예수님께서 오늘 성 마르꼬 복음사가 축일을 맞이하면서 복음을 통해 은혜로운 말씀을 주십니다.

“믿고 세례를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첫째는 마귀들을 쫓아내고...

둘째는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셋째는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넷째는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며 병이 나을 것이다. 


사랑하는 고운님들!

오늘 우리는 세례를 받은 하느님이 자녀로써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은총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누~려...누~려...누~려...누~려...누~려...)

매 순간 하느님의 말씀을 누리고 살면서...달이 지는 것에 아쉬워하지 않고 달이 뜨는 것과 다음 날이 오는 것을 기뻐하며 사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영적일기를 마무리 하면서...

하느님이 주신 매일 매일을 꾸역꾸역 살아내는 사람이 아니라, 매일 매일 기쁘게 행복하게 사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은총이 있으시기를...


고운님들은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내는 사람으로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루하루를 기쁘게 “사는 사람으로 사시겠습니까?” 아멘.




오늘 직장에서 연수를 들으며 감정카드에서 지금 감정을 고르는 활동을 했어요. 분명 지금의 나는 살면서 여느 때보다 좋은 사람들에게 감사할 만큼 많은 지지와 응원을 받고 있는데, 그래서 제가 고른 감정은 뜻밖에도 '침울함'이었습니다. 정작 나 자신을 들여다 볼 생각을 못했고, 누가 내게 어떤 식으로든 '요즘 괜찮냐'고 묻는 것도 이렇게나 오랜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다지 괜찮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오늘 1독서를 여러 번 찬찬히 읽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온 세상에 퍼져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도 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잠시 고난을 겪고 나면,

모든 은총의 하느님께서,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당신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신 그분께서


몸소 여러분을 온전하게 하시고

굳세게 하시며

든든하게 하시고

굳건히 세워 주실 것입니다.


그분의 권능은 영원합니다.

아멘."


제 안에 사랑이 있든 없든 기뻐하든 슬퍼하든 끊임없이 쏟아주시는 주님의 은총에 감사합니다. 저와 늘 함께하시면서 표징을 약속하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가 더욱 낮아짐은 무엇보다 명확한 당신의 표징입니다. 교만한 자에게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권능은 영원합니다. 아멘.


사랑합니다. :)



[4월 26일 (화) 부활 제5주간 화요일]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제 친구 중에 남자친구의 바람, 친구의 배신, 가정사, 그밖에 온갖 잡다한 흔히 어린나이에 한꺼번에 겪지 못할 일들을 압축적으로 겪은 친구가 있어요. 그때마다 저는 곁에서 늘 그 친구보다 더 격분했고, 다시는 연락하고 만나지 말라고, 제대로 화를 내라고, 고소하라고 호들갑을 떨며 온갖 충고를 했었습니다. 친구는 어린 나이답지 않게 굉장히 침착하게 일을 처리했는데, 그 친구가 가장 잘 하는 것은 용서하는 일이었습니다. 덮고 조용히 넘어가는 일, 묵묵히 참아내는 일이었습니다. 곁에서 저만 답답할 뿐이었어요.

그 친구의 깊은 심연이 이제서야 조금 느껴집니다. 그리고 제가 위로라고 던졌던 말들이 그때 그 친구에게 상처가 되었으리란 것도, 그리고 내가 그 친구에게 용서받은 사람 중 하나란 것도 깨닫습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란 어떤 것인지 오늘 종일 생각해보았어요. 죄란 죄는 모두 용서하는 방식의 권능에 대해, 그 사랑의 위대함에 대해서요. 실상 우리가 악을 악으로 갚는 그 순간에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지던가요.


저는 사랑 받아 마땅해서 사랑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기로 결정하셨으므로 사랑 받습니다. 저도 늘 사랑을 택할 수 있는 용기를 청합니다.


사랑합니다. :)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복음에서 오늘 예수님게서는 당신의 평화를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이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이에 대한 대답이 바로 1독서에 나와 있는 것 같아요.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당연히 겪어야 할 환난이니 굳이 걱정하고 겁을 낼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사람인 이상 당연히 불안할 수 있고, 세상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평화"라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평화는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따랐을 때 오는 영적인 평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부를 쟁취한 사람들이 종종 허무감이나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결국은 영이 아닌 육에 집중했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도 생각해보게 되네요.

남들사는 방식으로 충분히 살 수도 있지만, 그게 싫어서 저는 학교 다닐 때부터 약간은 이단아 취급을 받으면서 여기저리고 많이 튀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도 이런 제 모습이 항상 좋아보이지만은 않으셨는지 아직까지도 가끔 저를 보채시기도 하고요.

그런 식으로 20대를 지나 30대를 보내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스스로도 "마음이 산란하고" 두려웠던 경우도 많았습니다.
꽤나 큰 변화를 여러번 겪고 있는 최근에는 더더욱 그렇더라고요. 하지만 이 역시 제가 당연히 거쳐야 할 "환난"일지도 모르겠어요.
어제 성 마르코 축일 독서 말씀에도 나와 있듯이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고", 저의 "믿음을 굳건히"한다면, 오히려 하느님의 평화 안에서 비록 남들이 보기엔 뒤죽박죽이더라도 제 앞에 주어진 길을 재미있게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망각의 동물이라 그런지 그룹모임이 되었던 여기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던 금방 잊어버리지만, 이렇게 계속 이야기 하고 기록하다보면 제 기억 속 어딘가에는 남아있을 것이고, 언젠가 하느님의 말씀과 함께 제 영적 양식이 되리라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멘.



저에겐 기쁨과 슬픔, 영광과 회환, 비참함과 자랑스러움이 순식간에 뒤섞여 마음을 때렸던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라는 말도,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환난을 겪어야한다"라는 말도, 이해가 안 됐죠. 그냥 단순히 하느님의 나라는 들어가기 힘들군. 당연히 들어가기 힘들겠지. 그래서 저런 이야기들을 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그 오만가지, 극과 극을 달리는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순삭간에 밀려드는 경험을 하고 이것이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 하느님의 나라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감히 주제넘게 말해보면, 옛날 순교당하신 성인들의 마음이 알 듯 했어요. 고통스럽지만, 기쁜, 고난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그 알 수 없는 신비.
그 신비로운 경험은 고통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럼에도 저는 그런 신비를 허락하신 하느님께 찬미올립니다. 모든 것은 그 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그분이 우리를 잘 이끌어가고 계심을. 나는 그 분이 주신 울타리 안에서 피조물임을 잊지 않으며 성실하고 양심껏 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나의 부족함을 자랑하면 자랑할수록 그분이 채워주실 겁니다. 아멘. ^^


[4월 27일 (수) 부활 제5주간 수요일]

오늘 복음을 읽으며 마더 데레사의 삶이 떠올라서 <나의 빛이 되어라>라는 책을 다시 읽었어요. 마더 데레사는 가난한 이웃들 가운데서 빛과 같은 존재였지만, 정작 자신은 끔찍한 어둠 속에서 살았습니다. 마더 데레사의 영적인 삶은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해 목말라하는 고난의 길이었어요. 그러나 영적인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하느님의 품 안에 머무르겠다는 그녀 자신의 서원을 지켰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의탁하였기에 기쁨과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삶에 역설적이게도 끔찍한 어둠이 함께 하였다는 사실이 왠지 큰 위로가 됩니다. 힘들고 고달파서 '저는 하느님 모릅니다' 하고 도망가고 싶을 때에도 그저 등돌리지만 않고, 하느님 안에 머무르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느님 바짓가랑이만 붙잡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그 나머지는 온전하신 하느님께서 열매를 맺도록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


"어둠속에서……

  주님, 저의 하느님, 제가 누구이기에 저를 버리십니까? 당신 사랑의 자녀인 제가 이제는 가장 미움 받는 자녀, 당신께서 원치 않아 버리시는 자녀, 사랑받지 못한 자녀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애타게 부르고 매달리며 간절히 원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매달릴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혼자입니다. 어둠은 너무나 짙습니다. 그리고 저는 혼자입니다. 아무도 저를 원하지 않으며 저는 버림받았습니다. 사랑을 원하는 마음의 외로움은 견디기 힘듭니다. 제 믿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마음 깊은 곳. 저 깊은 곳에도 공허함과 어둠밖에 없습니다. 저의 하느님, 이 알 수 없는 고통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요. 끊임없이 아플 뿐입니다. 저는 믿음이 없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득 채운 생각과 말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괴로움으로 제 자신을 더욱 고통스럽게 할 뿐입니다. 제 안에는 해답 없는 의문이 너무나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 의문을 드러내기가 두렵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면, 부디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모든 것이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끝날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천국을 생각할 때면 너무나 뚜렷한 공허함이 떠오릅니다. 그러한 생각들이 날카로운 칼처럼 되돌아와 제 영혼을 다치게 합니다. 사랑이라는 말도 아무 것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를 사랑하신다고들 하지만 어둠과 차가움과 공허함의 현실은 너무나 커서 그 어떤 것도 제 영혼에 와 닿지 않습니다. 사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일치감과 사랑, 신앙, 믿음, 기도, 희생이 그토록 많았는데요. 성심의 부르심에 단순하게 응답한 것이 실수였을까요? 사업에 대해서는 한 치의 의심도 없습니다. 제 사업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업이라고 굳게 믿으니까요. 저는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이 사업의 일부가 저의 공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며 그런 유혹도 제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수녀님들과 다른 사람들은 제가 언제나 미소를 짓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신앙과 믿음과 사랑이 저의 온 존재를 가득 채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느님과 밀접하며 하느님의 뜻과의 일치가 제 마음을 모두 빼앗아 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의 쾌활함이 공허함과 비참함을 가리는 외투일 뿐이라는 시실을 그들이 알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과 공허함이 하느님에 대한 간절한 바람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습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모순이 저의 균형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저의 하느님, 이토록 작은 저에게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제 마음에 당신의 수난을 새기겠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그 답인가요?


 이것이 당신께 영광을 드린다면, 당신께서 여기에서 단 한 방울의 기쁨이라도 얻으신다면, 이로써 사람들의 영혼이 당신에게 다가간다면, 제 고통이 당신의 목마름을 채워드린다면,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삶이 끝날 때까지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저는 언제나 당신의 감춰진 얼굴에 미소를 짓겠습니다."


- 마더 데레사의 편지 중.





[4월 28일 (목) 부활 제5주간 목요일]

어제 어떤 분이 누가 꽃을 선물로 주면 그 꽃이 시들어서 버릴 때 마음이 아프다고 하시더라고요. 참 순수한 마음이었습니다. 천주교인이라면 흔히들 그런 경험을 하죠. 누가 준 묵주라서, 누가 축복해 준 성물이라서 소중히 여기고 함부로 버릴 수 없는 경험...

실상 나락에 떨어졌다고 생각했을 때에 나를 살린 것은 아주 거창하고 위대한 것들이 아니라 아주 작고도 순수한 것들이었습니다. 작은 친절, 문득 지어준 미소,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 서로를 위해 해준 기도, 우연히 말해준 말씀 한 구절, 사제가 정성스럽게 해 준 성사 같은 것...
어떤 날에는 그냥 팔뚝에 두르고 있던 묵주 팔찌 하나가 다시 나를 정신차리게 했습니다. 그렇게 작고 순수한 것들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고, 좌절했을 때에 다시 일어서게 하는 용기가 되고, 어둠 속을 걷는 나를 살리는 빛이 되기도 합니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라는 예수님이 주신 계명을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우리의 작고 순수한 행동이 또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오늘을 살아갈 이유가 되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미소 짓고, 더 많이 기뻐해야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4월 29일 (금)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서로 사랑하여라..

오늘 복음의 말씀의 

서로 사랑하여라..말씀은 제가 오늘 그리고 지난날 본것들을 떠오르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살면서 인생의 짧은 여정동안 많은 인연들을 맺고 살아 가게됩니다. 
자신이 느끼는 좋은 인연 좋지않은 인연들이 있겠지요  

오늘 문득 제가 만낫던 그리고 만난사람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사실 좋지않은 인연보다 좋은인연을 먼저 떠올리게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떠올리는 저의 모습을 보게되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좋지않은 그리고 제 자신이 미워했던 사람들을 생각해보니.. 
제마음이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그분들도 모두 사람의 아들 사람의 딸들이며 하느님의 아들 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제가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한이들을 저에게 보내주신 이유를 마음속으로 질문을 드렸습니다.     
주님께선 
"서로 사랑하여라" 말씀해주십니다.  
그 말씀밖에 들리지가 않았습니다. 

그저 사랑하여라 말씀해주심이 계속하여 저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그리고선 저의 마음은     
저들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저들을 미워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들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저들을 안고싶습니다.          

제가 왜 저들을 미워할수 밖에 없습니까 
말씀드립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이 생기면 화를내기도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저는 그것이 단순히 내가 분하 여서 내가 미워하여서 그런줄만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것 같았습니다. 

주님께선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하는 저희에게 그저 사랑하라 말씀하여주십니다. 

사랑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사랑하시는것처럼 
저희도 서로 사랑하고 싶습니다. 
저희의 미워하는 마음을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을 주님께서 어루만져주시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주세요 

사랑하고 싶습니다. 

아멘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 마음 속에 뿌려주신 말씀의 씨앗을  풍성한 열매로 키워내 배고픈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 아멘!



[4월 30일(토) 부활 제5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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