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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게시판 Youth Board
로고스 매일복음묵상 [부활 제4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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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6.04.24

<규칙>
- 단톡방 안에서 매일복음과 묵상나눔 이외의 모든 사담은 금지입니다.
- 단톡방을 나가고 들어오는 것은 언제든 자유입니다. 
분당성요한 청년이라면 누구든지 초대 가능합니다. 
(로고스 대표봉사자에게 문의해주세요)


<로고스 매일복음묵상 나눔방입니다.>
1.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신 분께서 그날의 복음을 올려주세요.
2. 오늘의 복음을 마음에 새기며 하루를 알차게 보냅니다.
3. 하루 동안 복음을 통해 내 삶에서 드러나신 하느님을 

자유롭게 나누어 주시고, "사랑합니다"로 마무리해주세요.)
4. "행복합니다"는 마음속으로 답해주세요.





[4월 17일 (일) 부활 제4주일]

나 요한이 보니 수를 셀수 없을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원로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어좌 앞에 있고 그분의 성전에서 그분을 섬기고 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그들을 덮는 천막이 되어 주실 것이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해도 그 어떠한 열기도 그들에게 내리쬐지 않을것이다.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어제의 일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분의 꿈을꾸고 미사를 드린 어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눈물을 흘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월호참사로 숨을 거두신 모든 분들과 일본 구마모토의 지진 에콰도르의 지진 남태평양의 통가의 지진까지 계속된 지진으로 인하여 숨을거두신 분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빨아 희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어좌 앞에 있고,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고 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그들을 덮는 천막이 되어 주실 것이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해도 그 어떠한 열기도 그들에게 내리쬐지 않을 것이다.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사랑합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2013년 봄에 저는 어쩌다 보니 프랑스 루르드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성녀로 세례명을 정하게 되었어요. 그 날은 성소주일이었고, 오늘 복음말씀과 같은 말씀이 선포되었지요. "My sheep listen to my voice." 그 문장이 제게는 "Listen to my voice!" 명령어로 들렸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바로 입교 하고 그해 성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부르신 섭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 품 안에 있지 않았다면 아버지의 장례를 어떻게 치렀을지, 가족의 아픔을 어떻게 달랬을지,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조차 힘든 그런 날들을 생각해봅니다.


우리 각자를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원하시는 때에 부르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찬미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더 잘 순응하는 제가 될 수 있기를 청합니다.


사랑합니다. :)



"교회"의 라틴어 "eccelsia"는 고대 그리스어의 ek-klain에서 온 말로 "불러 모음"이라는 뜻이 있는 단어라고 합니다. 하느님 앞에 모인 선택된 백성의 모임, 즉 교회라는 뜻으로 발전한다고 합니다. 즉,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고 그에 대한 응답을 하면 우리는 각각의 개별 교회가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교회에서는 신자 개인 개인이 하나의 교회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오늘이 성소주일이기에 더더욱 수도성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가는데 꼭 그게 아니어도 보통성소와 관련된 부르심은 정말로 많습니다. 우리가 각자 세례를 받던 때의 부르심, 그리고 거기에 대한 응답이 있을 것이고, 견진과 혼인과 같은 7성사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부르심이 있을 거에요. 개인적으로는 생각해보면 처음 성경모임으로의 부르심, 봉사자로서의 부르심,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직업군으로의 부르심(정말 생각지도 못한 길이었거든요). 그 때마다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르는 양이 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제 선택이지만, 지금 뒤돌아보면, 매번 많은 고민을 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라왔던 양이라고 믿고 싶어요.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는 더더욱 그분의 목소리를 민감하게 알아듣고 따르는 사람이 되고 싶고요. 적어도 세례를 받고 가장 중요한 부르심 중 하나를 받는 저 역시 결국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로 한 하나의 "교회"이기 때문이죠.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우리 모두가, 제가,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교회로서 지상에서 맡은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나갈 수 있는, 그리하여 결국에 하느님 앞에 나아갔을 때는 생명의 샘으로 이끌리고 눈물을 닦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청합니다.


더불어 성소주일이었던만큼 자기 전 제가 거쳐갔던 신부님들, 수녀님들, 수도자 분들을 기억하며 기도하고자 합니다.


이번 한 주, 하느님의 부르심을 생각하며 힘내는 한주가 될 수 있기를 역시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멘.




[4월 18일 (월)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어떤 글에서 매력있는 사람이란 "일곱째, 상처를 내가 좀 더 입더라도 기꺼이 마음이 헤픈 쪽을 선택한다.", "둘째, 괴로운 상황이 닥쳐도 그것들을 꿀꺽 삼키면서 묵묵히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다." 이런 마음의 결을 가진 사람이란 글을 보았습니다. 왜인지 마음에 퍽 와닿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무궁무진한 매력쟁이인가봐요.


사실 요즘 직장에서 어떤 분과 성격이 너무나도 맞지 않아서 무척이나 괴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저는 늘상 웃고 다니는 편인데 요즘은 무슨 말을 들어도 심드렁해지고 밥 먹는 것도 즐겁지 않고 그저 어떻게 피해다닐까? 이런 생각만 하고, 한편으로는 또 그런 제 모습이 부끄러워 머리를 쥐어 뜯고 있어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나의 편견과 고집, 스스로 쌓아올린 자기합리화의 울타리 안에 머무르는 일은 참으로 편리합니다. "저 사람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니 피해다니고 미워해야지" 이런 방식을 취하는 건 나의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저를 끊임없이 불러내시고 부끄럽게 하시네요. 내일은 조금 더 그분께 마음을 내어드려야겠어요...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예수님의 문을 택할 수 있도록 용기를 청합니다.

사랑합니다. :)



[4월 19일 (화) 부활 제4주간 화요일]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언젠가 세상을 창조하는 게임을 했던 적이 있어요. 산을 깎고 바다를 메워 땅을 짓고 사람들을 새 땅으로 이끄는 그런 게임이었는데, 종종 어떤 인간은 제가 이끄는 길이 아니라 험한 높은 산으로, 다시 깎아지는 절벽으로 혼자만의 길을 헤매며 삽질을 하더군요.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기도의 힘을 모아서 땅을 깎고 바위를 옮겨주어야 했어요. 그러는 동안에도 길잃은 사람은 엎어지고 넘어지며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헤매더라고요. 한낱 스마트폰 게임이 겁나 철학적이더군요...


그 모습을 보며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나와 같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하느님은 곁에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시겠지요.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제게 주어진 모든 상황이 하느님께서 저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마련하신 것이라고 받아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묵묵히 주어진 길을 걷다 보면 제게 가나안땅을 보여주시겠지요. 내가 만든 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오늘 복음과 독서는 굉장히 대조적인 상황을 전합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이방인들까지 회심하여 주님의 말씀을 따르며 "그리스도인"으로 불린 사건을 전하며 요한 복음사가는 영원한 생명이시자 착한 목자인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다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유다인들은 정녕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주님의 양이 아닌 것일까요? 저는 주님의 양이 아닐 수도 있고, 주님의 양이긴 하지만 유다와 같이 어둠 속을 헤매는 양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자던 후자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답은 복음에서도, 독서에서도 이야기를 해줍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 즉 회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더 깨어 있어야 하고, 깨어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에 어딘가의 나눔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하느님을 따르는 일은 외줄타기와도 같아서 까닥 잘못하면 깊은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은 순식간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적어도 깨어 있거나 깨어 있도록 노력하면 떨어지지는 않고, 외줄에서 중심을 잠깐 잃어도 줄을 붙잡고 떨어지지는 않고 다시 위로 올라올 수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요.

2년 전 정말 어두컴컴한 곳에 있을 때, 정말 줄에 간신히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때 주님께서는 제 어둠 안에서 다시 밝은 빛을 비춰주셨고, 줄 위로 올라올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모처럼 의미있게 맞은 부활시기에 다시 또 주님의 목소리와 멀어지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기를 청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멘.




[4월 20일 (수) 부활 제4주간 수요일]

이해하기보다는 비판에 앞섰고, 

덮어 주기보다 들추기를 즐겼으며, 

싸매주기 보다는 아픈 데를 건드렸고, 

별 것 아니면서 잘난 체 한 것들을 

다 용서해 주십시오.


내 인생에 폭풍이 있었기에 

주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며, 

가끔 십자가를 지게 해 주셨기에 

주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었음을 감사드립니다.


나를 사랑해 준 사람에게 감사하고 

나를 공격해 준 사람에게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를 더 너그러운 인간으로 만드셨습니다.


때때로 가시를 주셔서 잠든 영혼을 깨워 주셨고,

한숨과 눈물도 주셨지만 

그것 때문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도 배웠습니다.

실수와 실패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겸손을 배웠습니다.


날마다 평범한 생활 속에서 

감사를 발견하는 지혜를 주소서.

무엇이 생겨서가 아니라, 

무엇이 나에게 발생하지 않음을

감사하게 하소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와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과, 

편리한 세월에 태어난 것과, 

세어도 세어도 끝이 없는 

그 많은 감사를 알게 하소서.


남과 비교하며 살지 말게 하시고, 

질투의 화산 속에 들어가지 말게 하시고, 

돈을 목적 삼게 하지 마시고, 

으뜸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게 하소서.


사랑의 속삭임을 입술에 주시고 

감사의 노래를 내 심장에 주소서.


  -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성당-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주님의 저 말씀이 참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저의 허물을 들추고 벌하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악에서 구해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요한 복음에서는 어둠을 더 사랑한 믿지 않는 자들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복음서 앞부분에 나옵니다. 결국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결국, 의롭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마지막 날 가서 이미 그 확정된 심판을 보게된다는 이야기로도 저는 느껴집니다.

독서의 사도행전에서 안티오키아 교회 사람들은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단식은 단순히 음식을 안 먹는다는 의미에서의 단식이 아니라 우리가 사순 때 온갖 것을 끊어낸, 회개와 화해를 위한 단식이라고 생각이 되어요. 교회력으로 각 시기가 나뉘긴 하지만 결국 "하느님을 따르려면 꾸준히 진정한 의미의 단식을 해야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머리가 커질수록 교만해진다고 오늘도 저는 머릿속의 생각이 복잡해지고, 하느님과 내 주변 이웃을 판단하고 제멋대로 심판하고 있습니다. 제 안의 빛을 더욱 밝히고 영원한 생명인 그분의 명령은 따를 수 있기를 청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사랑합니다.
아멘.


오늘 복음 바로 다음 13장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 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해야 할 마지막 일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이 자신을 보내신 뜻을 알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복음은 어딘가 죽음을 각오할 마음을 다잡아 보는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내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친히 나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임을 안다..."

오롯이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마음의 결을 느껴봅니다. 그분이 지고 가야했던 크나큰 고통을요.
오늘 종일 틀어 둔 "주께 갈 수 있을까. 주께 갈 수 있을까." 하는 노래가사가 유난히 마음에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하느님께 의탁하셨고, 하느님께 기도하셨고, 십자가의 죽음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더더욱 하느님의 빛 속에 머무르셨습니다.
어둠 속을 걷는 제게 십자가는 단 하나의 이정표이자 등불입니다. 저를 비춰주세요 주님.

"주께 갈 수 있을까 내 주께 갈 수 있을까
도와주세요 그 분이 절 볼 수 있게 도와주세요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숨 쉬기 힘든 절망이
도와주세요 희망의 빛 볼 수 있게 도와주세요
당신께 내 모든 것 맡깁니다
당신께 용기 내어 절 고쳐 주소서 내 주님."
- <너를 용서하노라> 중에서.

사랑합니다. :)


[4월 21일 (목)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예수님께서는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라고 하십니다. 당신께서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보내셨음을 알고 그 사명을 다하였습니다. 오늘의 독서말씀과 공관복음에도 나오듯이 세례자 요한은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라고 하며 자기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하면서 자신의 사명을 묵묵히 수행하였습니다. 독서에 나오는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며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는 말씀과 이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에 따라 파견되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곳곳으로 전교여행을 떠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특히 오늘의 말씀에선 예루살렘에서 하느님 구원의 역사와 기쁜 소식을 설파합니다.

어제에 이어 주님께서는 오늘도 저에게 당신을 있는 그대로 맞아들이라고 요청하십니다.
나와 남을 심판하지 말고 당신 말씀에 따라 저에게 주어진 사명을 당신 자신처럼, 세례자 요한처럼, 그리고 사도들처럼 수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제게 주어진 사명을 정말 꿋꿋이 해나갈 수 있도록 악마저 선으로 바꾸시는 당신께 용기를 청합니다.

"우리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여러분의 모든 선의와 믿음의 행위를 당신 힘으로 완성해 주시기를 빕니다." (2코린 1,11)

사랑합니다.
아멘.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며 너희도 서로의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오늘 복음 말씀을 이어 가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나면 분명히 낙심하고 마음을 어지럽힐 제자들을 헤아리시며, 너희는 내 사랑을 받고 있다, 나를 맞아들여라,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사실 저는 발씻김 예식을 할 뻔한 적이 있어요. 예식을 시작하기 전에 너무나 부담스러워서 그 자리에서 도망나왔습니다. 누군가의 섬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하셨으니, 저는 아직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받아들이기에 서툰 사람인 것이지요.

게다가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라니요, 하느님...
무엇보다도 먼저 내가 나임을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토록 부족한 저를 하느님의 일을 하시는 데에 써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제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달을 수 있기를 청합니다.

사랑합니다. :)



[4월 22일 (금)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오늘 미사의 본기도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자유와 구원을 주시는 하느님,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어, 성자의 피로 구원받은 저희가, 하느님의 힘으로 살며 영원한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오늘 음악회에서 신부님들께서는 참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결론은 "마음이 산란해"지더라도 주님을 믿고 따라 달라는 이야기로 저는 들렸습니다. 주님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밝혀주시고 광야에서 물과 먹을 것을 주시며, 길을 잃고 헤맬 때 길이 되어 주시고, 우리를 구해주시기 위해 매일 (혹은 매주일) 우리의 빵이 되어 먹히십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저는 걱정이 없어보이고 제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뭐든 하면 될거라고 이야기 하지만 마음에는 불안함이 크고 혼란스러울 때가 많으며, 그럴 때마다 종종 제 힘으로 무엇인가를 하려는 경향이 굉장히 강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언젠가는 주님 안에서 다 이루어질 것은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자리를 마련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해야할 일은 그분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며 그분께서 마련해주시는 자리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의로운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겠지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주님께서 저의 길이고, 제 발 앞의 등불이며, 진리이시고 생명이라는 말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늘 스스로의 믿음이 약하다고 생각하고 걱정이 많지만, 진리 앞에 그리고 진리 안에 주님 가시는 길 묵묵히 따라갈 수 있기를 청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멘.


오늘도 참 여러번 제 마음이 산란했습니다. 직장에서 갑자기 야근을 해야했고, 그러느라 급하게 퇴근하여 과속으로 달려 성당에 갔고요. 점심시간에는 또 성질을 참지 못해 모르는 사람에게 화를 내기도... 삶이 고달플 때 가끔 제가 상상하는 게 있어요. 실은 저는 재벌 2세인 거죠. 나는 언제든지 이 직장 그만둘 수 있고, 이까짓 돈푼 안 벌어도 되지만, 그러면 내가 심심하니까 여기서 일해주는 거야, 기꺼이 내 능력을 내어주는 거야. 그러니까 나를 이용하는 걸 너에게 허락한다.. 훗. 이런 마인드를 장착하는 거죠. 실제로 이 상상은 매우 효과가 있습니다. 관조적 자세가 가능해진달까요.

사실은 제 뒷배에 있는 재벌 아버지는 예수님이시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의 거처를 마련하셨다고 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셈이네요.
아버지 곁에 머물 수 있는 영원한 집. 평화와 안정이 가득한 그런 제 자리를 상상해봅니다. 이제 돌아가신 지 300일 된 저희 아버지도 예수님께서 마련하신 거처에 계시겠지요. 하나의 오롯한 삶이 역설적이게도 죽음 후의 모습을 증명한다는 걸 저는 제 눈으로 목격하였으니 예수님의 오늘 말씀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사랑하는 그대에게>라는 성가를 들었어요. 사제를 위한 가사라고 하는데 제게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대 가는 곳 하늘마을. 다시 생각해보아도 참 잘 나섰다오."

잠시 그리스도인이기를 택한 저 스스로에게 쓰담쓰담 해주어야겠어요. 예수님을 따르는 이 길, 참 잘 나섰습니다.

사랑합니다. :)


[4월 23일(토) 부활 제4주간 토요일]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해봤어요. 인류가 타임머신을 발명하여 생물 진화 초기의 단계로 간다면, 그래서 생물 진화를 유도할 수 있다면요. 아직 물속에서만 사는 동물에게 다가가 곁에서 "너는 진화의 핵심 고리 역할을 할 거란다. 이제 너는 물 밖으로 나가야 돼. 그래야 육지 생물들이 발생할 수 있고, 너로 인해 앞으로 육지에 동물들이 번성할 거야."라고 백 번을 말해도 당연히 못 알아 듣겠지요. 결국은 육지에서도 살 수 있음을 직접 몸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아담 이래 끊임없이 하느님께 등 돌리고 제 뜻대로 해보려는 인간이 하도 답답하셨던 나머지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이 아닐까... 그러니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이 곧 하느님께 향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매일미사를 훑다가 보니 유독 영성체 후 묵상 부분이 마음에 들어옵니다.

●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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