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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게시판 Youth Board
로고스 매일복음묵상 [부활 제3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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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6.04.18

<규칙>
- 단톡방 안에서 매일복음과 묵상나눔 이외의 모든 사담은 금지입니다.
- 단톡방을 나가고 들어오는 것은 언제든 자유입니다. 
분당성요한 청년이라면 누구든지 초대 가능합니다. 
(로고스 대표봉사자에게 문의해주세요)


<로고스 매일복음묵상 나눔방입니다.>
1.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신 분께서 그날의 복음을 올려주세요.
2. 오늘의 복음을 마음에 새기며 하루를 알차게 보냅니다.
3. 하루 동안 복음을 통해 내 삶에서 드러나신 하느님을 자유롭게 나누어 주세요.
   (5문장 이상의 묵상으로 제한합니다. "사랑합니다"로 마무리해주세요.)
4. "행복합니다"는 마음속으로 답해주세요.





[4월 10일 (일) 부활 제3주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물으신 예수님의 의중이 무엇일까? 무슨 의미일까? 성경모임을 오래 하다 보니 습관적으로, 혹은 직업병 때문에(?) 그 속뜻을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런 상상을 해보았어요. "뿅뿅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신다면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 오늘은 예수님께 사랑고백을 하고 잠들어야겠어요.

(솔직히 사랑하는지 잘 모르겠어도 일단 그냥 눈 꼭 감고 사랑한다고 해보세요. 그럼 사랑하게 될 거예요. 제 생각엔 예수님께서도 이걸 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세 번이나 물으시죠. 심지어 다 아시면서요...(뿌듯))


주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하느님.


사랑합니다. :)



단순하고 다혈질인 베드로는

자신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다시 주님께 사랑을 고백합니다.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께서는 알고계십니다.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께서는 알고계십니다.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께서는 알고계십니다.


저 역시 잘못을 행할때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백하려합니다.


예, 주님 그러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께서는 알고계십니다.


어느 누가 이런 나를 받아줄 수 있을까요?

내 배신에 이를 득득갈며

원한을 품지 않을 자,

저지른 잘못은 보지 않고

뻔뻔하다!!

뒷담화 작렬로 보복하지 않는자 ^^


그럼에도 너를 사랑한다..

잘 왔다.. 너면 된다.

왔으면됐다.. 안아주실 분


오늘도 내일도 

매일매일 또 속아주시는

크신 사랑

주님밖엔 없습니다(반함)


사랑합니다:)



하느님의 영광 그리고 순종


신부님께서도 오늘 강론 중에 이야기 하셨지만 베드로에게 사랑하느냐고 세번 물으신 예수님의 질문은 원어로 "아가페"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라고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아들이신 당신도 온 마음과 정신과 목숨과 힘을 다해서 사랑할 수 있는지를 물으신 것입니다.


부활절을 기점으로 우리는 변화한(부활한) 사도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지만 때로는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예수님에 대한 불순종을 보여주던 이들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겪고 의심을 거두고, 두려움을 이겨내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부활 제3주일인 오늘 역시 사도행전의 말씀은 사도들이 어떻게 예수님 말씀을 증거하는 그분의 증인으로 활동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정말 모질게 모욕을 당하지만 사도들은 마음과 정신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전파합니다.


오늘 미사가 끝나고 집에서 연락이 와 아버지께서 응급실로 가셨다길래 무슨일인가 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얼른 가보았어요. 연로하신 분이 목욕탕 온탕에 오래 앉아계시다가(정말 오래 들어가계셨더라고요. 의사선생님께 잔소리 엄청 들음..) 일어났는데 정신을 잃으면서 엎어지셨더라고요. 다행히 CT나 엑스레이 상에 문제가 전혀 없고 피검사 결과도 저희가 모르는 질병은 없어서 찢어진 부위를 꿰매고 퇴원조치를 받고 지금 들어왔죠.


와서 오늘 말씀과 대비해서 곰곰히 생각해보았어요. 일단 얼굴이 조금 찢어진 정도로 끝난 게 감사하지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관복음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마르 7,10-11)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30-31)


예수님은 공생활 중 이스라엘 민족의 이중성에 대해 질타한 바 있으십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이 주신 십계명을 언어적인 의미에 얽매여 613개가 넘는 율법항을 만들어내고, 그 율법으로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십계명을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 즉 하느님 공경 때문에 안된다며 실제로 당시 사회에서 모순적인 행태를 많이 보였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같이 이루어지는 십자가 사랑을 실천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십계명과 연결지어보면 그 이웃사랑의 시작은 바로 나와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부모님, 그리고 가족인 것이죠.


어려서는 제가 살아온 햇수보다 부모님이 살아가실 수 있는 햇수가 더 많았지만, 지금은 제가 살아온 햇수보다 더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더러 저의 엄청난 욕심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사건과 오늘 말씀은 저에게 하느님께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부모님과 가질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더 가지라는 의미로 와 닿네요. 사실 작년말부터 다시 집에서의 시간을 더 가지고 있지만 최근 들어와서 소홀해졌던 것도 사실이에요.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사도들이 증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저도 제 나름대로 말씀에 순종을 한다면 그것이 곧 저와 제 주변을 더 자유롭게 하고 그분을 영광스럽게 해드리는 것이 아닐까요?


"살해된 어린양은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영예와 영광과 찬미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 저에게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하느냐 묻는다면 저는 죄송한 마음부터 들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실수록 큰 십자가를 주신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께 나는 그렇게 사랑해주지 않으셔도 된다고 아주 작게 말씀 드린적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실 십자가가 너무 두려웠고 지금도 두렵습니다. 매일매일 하느님 아버지 덕분에 이렇게 살 수 있다고 감사하다고 하며 막상 제가 짊어질 조그만 십자가라도 생각하면 하느님의 사랑에서 잠시 발을 빼려는 제 모습이 이전에 베드로가 3번이나 예수님을 부정했던 모습과 똑같이 보입니다.  


제가 16살 때 ...... 하느님을 원망했습니다. "왜 하필 우리 아빤가요? 왜 저희 가족인가요? 십자가는 그만 지고 싶습니다... "

 예수님께서 저희를 위하여 엄청난 고통을 참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 고통은 생각하지 않고 제 고통만 생각했습니다... 피정에서 신부님이 그러시더라요 언젠간  "왜"라는 질문이 "아!" 하는 깨달음으로 바뀔거라고요. 


하지만 아직 저는 많이 부족한가 봅니다. 편히 지낼 땐 또 "하느님 사랑해요"를 외치다가 오늘 ...... 그리고 혼자 생각하며 하느님을 다시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망하면 안된다는 거 아는데도 예수님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거 알면서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런마음으로 잠자리에 누웠는데 이 매일복음 단톡방이 눈에 들어왔고 오늘 차 말씀과 나눔을 읽으며 저의 이야기도 쓰고싶단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오늘 복음과 제 상황을 연결시키고 나눔을 쓰는 제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다시 속세로 돌아간 모습을 보였다가 예수님을 뵙고 바로 예수님을 다시 따라 갑니다. 저는 현재 속세에서 예수님의 목소리를 못 듣고 헛그물질을 하고 있는 중 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도 언젠간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물질을 멈추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을 또 예수님께 사랑을 진정으로 고백하게 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요. 예수님의 크나큰 사랑을 다시 느낄 그 날이 저에게 하루라도 빨리 오길 기도하며 이만 잠에 들까 합니다.. 오늘 이 톡방을 보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사랑합니다.



[4월 11일 (월) 부활 제3주간 월요일]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몇 번 하느님을 만나뵙고 기적을 체험을 했을 때 저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높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은 무뎌지고 또 다른 기적을 갈구하였습니다. 저도 군중과 같이 표징을 보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물질적인것을 따른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보내신분을 믿기 위해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이제는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그분을 찾아야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기도하고 말씀안에서 살아야겠습니다.


오늘하루도 화이팅

사랑합니다



하느님 그리고 하느님의 일


배불린 먹은 군중이 예수님을 따라오니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그들이 자신을 진정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보인 기적(표징)을 보고 따라왔다고 단호하게 이야기 하십니다. 그러자 군중들이 질문을 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답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예전에도 한 번 나눴던 이야기인 것 같은데, 누군가에게 "하느님의 일을 찾지 말고 하느님을 찾으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어요. 요한 복음에서는 분명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인데 무슨 말일까.. 무슨 뜻인지는 이해가 되었지만 오늘 이 복음 말씀을 읽고 조금 더 생각해보았어요.


아마 여기의 "하느님의 일"에선 하느님보단 "일"에 더 강조가 되어 있다고 생각이 되어요.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일에만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하느님"은 빠져서 없어지고 "나"와 "일"만 남게 되더라고요.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외줄타기와 같이 자칫 잘못하면 나의 교만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라는 걸 참 많이 깨달았던 것 같아요. "나"와 "일"이 남는 순간 그것을 깨치고 말씀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일"이나 "힘든 것"이 아닐 것이고 하느님에 대한 "감사"가 남는 또 다른 축복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점점 더 "나"의 의지와 "일"의 어둠이라는 악순환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하느님은 제 곁에 계셔도, 제가 어둠 안에서 그분을 느끼지 못하고, 결국 제 안에서는 점점 더 하느님은 없어지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하느님의 일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생각해봤어요. 그 분의 말씀과 그 분의 가르침 안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일, 이것이 그분에 대한 믿음을 증거하는 것이고, 그 말씀과 가르침 안에서라면 무엇을 하던 "하느님의 일"을 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바꿔 말하면 하느님께서 최초에 인간을 창조하고 강복하시면서 말씀하신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며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리는" 것이겠죠. 물론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피조물들을 다스리라는 것은 이들을 정복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창조질서에 맞게" 목자의 역할을 하라는 것일테고요. 내가 공부를 하던, 직장에서 일을 하던 일상의 생활에서 무엇을 하던 간에 그 분의 말씀과 가르침을 되새기며 그에 맞게 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나는 무엇을 하던 간에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고, 주변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하느님의 뜻을 조금 더 예민하게 발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신부님들께 늘 듣는 이야기이지만 항상 말씀을 가까이하고 저에게 부족한 기도도 계속해야겠지요. 거기에 더하여 독서의 스테파노가 억압을 당하는 것처럼 저 역시 또래 집단의 시선, 사회의 시선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 분의 말씀과 가르침이 알게 모르게 우리 안에, 제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온갖 어려움에 처해있는 스테파노의 얼굴이 최고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던 것처럼 저도 그런 모습에 점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며 행복할 수 있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저는 항상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감사드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주 투정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기도합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과 좀더 편안함을 찾는모습을보여드리기도합니다. 한편으로는 현재보다 나은 삶을 살기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것은 하느님께서도 보시기에 좋으실것이라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에선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애쓰지말고 길이남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양식을 얻으려고 애써라" 말씀해주십니다. 그리고 사라지지 않을 양식을 얻을수있는 일도 말씀해주십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것들을 찾는것이 아니라 영원히 길이 남을 양식을 얻으려고 애쓰라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얼마전 저는 저보다 한살위 연배의 선배가 암으로 투병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나이는 이제 삼십대초반의 나이입니다. 

그분은  몇년전부터 크게 사업을 하였고 성공하여 이제는 특별히 일을하지 않아도 사는데 지장이 없을정도로 아니 그보다 더 많은 큰돈을 벌게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동안의 삶을 후회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분이 하신 사업은 합법적인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다고 합니다.지금의 삶보다 더나은 환경을 위하여 노력하는것은 앞에서와 같이 당연히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일것입니다. 하지만 그 의무를 벗어나 끝없는 욕망의 늪에 빠지게 된다면 지금의 삶도 그리고 앞으로 살게될 삶에도  오늘을 감사드리는 삶이 아니라 채울수없는 끝없는 욕망속에 빠지는 삶을 살게될것입니다 


영원히 행복하지 않고 영원히 불행하지 않으며 영원히 기쁘지 않고 영원히 슬프지 않습니다.


오늘을 허락해주시고 일용할양식을 주시며 휴식을 허락해주심을 감사드리며 

오늘 복음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겨 실행할수 있기를 청합니다. 제가 저의 마지막날에 감사드릴수 있기를 청합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눠주신 빵이 누군가에게는 썩어 없어질 양식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이 됩니다. 왜 일까 생각해봤는데 결국은 빵을 나눠주신 예수님의 참뜻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제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예수님께서 나눠주신 그 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반성해봅니다. 제가 받은 사랑을 베풀지 못하고 내 밥그릇만 채우려 혈안되어 살아 온 건 아닌지 ㅜㅜ 누군가 나에게 건네주는 빵만 쫓는 빵순이 빵돌이가 아니라 직접 빵을 굽워서 나눠줄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수화에서 '거룩하다'는 말을 코에 생기를 불어넣는 동작으로 표현한다고 하네요. 거룩함은 하느님에게서만 옵니다.

우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눈앞에 두고 하느님께 강복을 청합니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청함으로써 목숨붙이의 숙명인 먹고 마시는 행위가 비로소 거룩한 잔치로 거듭납니다. 나의 구질구질하고 비루한 일상적 삶이 감히 이룰 수 없는 거룩함을 꿈꾸는 것은 하느님을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직 그 방법밖에는 나의 자력으로는 거룩함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찬전례로 그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 곧 하느님의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를 수 있기를 청합니다.


감히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감히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감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감히 용감한 사람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며,

감히 닿을 수 없는 저 밤하늘의 별에 이른다는 것.

이것이 나의 순례이며,

저 별을 따라가는 것이 나의 길이라오.

아무리 희망이 없을지라도,

또한 아무리 멀리 있을지라도.

-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중.


사랑합니다. :)



[4월 12일 (화) 부활 제3주간 화요일]

소설 <파이이야기>에는 성당에 처음 들어간 주인공 파이가 '누가 신일까?' 궁금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가 성전에 모신 신은 세속의 눈으로 보면 참 이상한 신입니다. 우리가 성전에 모시는 예수님은 부활의 영광을 누리는 모습도, 기적을 행하는 모습도 아닙니다.

우리가 성전에 모신 예수님은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하고 단애 위에서 부르짖어도 아무런 응답도 오지 않은 날의 예수님, "자,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주나 봅시다." 사람들의 조소가 터져나오던 날의 예수님,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인데, 그분께서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했던 가브리엘 천사의 말이 말짱 거짓말이 되어 성모님조차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던, 바로 그 날의 예수님입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예수님은 공생활 동안에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고, 병자가 일으켜 세우시는 등 여러가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행하신 참된 기적은 골고타 언덕에서 일어났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저를 왜 버리셨나요, 저 무조건 행복하게 해 주세요. 누구인지도 모르는 신에게 무작정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에, 하늘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다고 느껴지던 그때 실은 하느님께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침묵하시는 것 같은 순간에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기를 선택하면, 그때 우리 안에서 하느님은 일하십니다.


"모든 빛나는 것으로부터 멀리 있으면서 우리의 보잘것없음을 사랑합시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가난해질 것이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으러 오실 것입니다." -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사랑합니다. :)




[4월 13일 (수) 부활 제3주간 수요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다시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주님말씀을 가슴속에 되새기고 되새깁니다. 저는 주님을 저의 눈으로 보지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선 보고서도 믿지못한다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저의 눈으로 보지못하여도 하느님께서 저를 바라보아 주시는것이 너무 좋습니다.  

저를 바라보아 주실때의 그 따뜻함과 평화를 마음속의 말씀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주님앞에 죄인인 제가 사람의 눈으로 주님을 보려고 했고 죄를 지엇고 죄를 짓고있으며 죄를 짓게될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한사람도 빠짐없이 잃지않으시려는 주님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찬미받으소서

  

주님께 찬미드리는 저의목소리가 배부르고 충만하여 강할때보다 마지막 아래의삶의 낭떠러지에 서게되어 저의 목소리가 약해질때 저의 의지가 아닌 아버지의 의지로 강함이 되어주세요 

주님의 사랑은 제가 살수있는 심장입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아멘

사랑합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오늘 감기가 심하게 들려 하루 종일 끙끙 앓았어요. 몸이 무섭게 열을 내는데, 정말 감기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해야할 일이 산더미인데 다 재쳐두고 하루 종일 잤습니다. 잠들 때마다 죽음의 순간에 대해 생각했어요. 가족들의 말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일상의 온갖 해야할 일들을 남겨둔 채 가물가물해질 때, 죽는 마지막 순간에 이런 기분일까. 나는 어떻게 하면 거룩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어제의 나는 죽고 늘 다시 태어나는 오늘의 나로 살아야겠습니다. 생명의 빵으로 살아야겠습니다. 무사히 감기를 낫게 하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전능하신 천주여,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
아멘.

사랑합니다. :)


[4월 14일 (목)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생명의 빵이다."

오늘 성체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어요. 성체를 예수님의 몸이라 굳게 믿고 "그리스도의 몸" 하면 "아멘" 하고 받아 모시는 우리. 혹시나 성혈을 흘릴까, 성체가 떨어질까 걱정하는 모습이 뭇사람들의 눈에는 참으로 우습고 기이한 행위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요.

얼마 전에 제 동생이 세례를 받고 첫 영성체도 했어요. 동생이 성체를 모시는 모습을 보며 내 동생은 저게 무슨 의미인지 알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굳이 물어보지 않았어요. 우리가 성체를 예수님의 몸이라 굳게 믿든 믿지 않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든 되어 있지 않든, 깊은 신심으로 모시든 습관적으로 모시든 한 사람에게도 빼놓지 않고 우리에게 오십니다. 가끔은 그렇게 자격 없이 성체를 모시러 나가는 저를 아무도 잡아 끌어내지 않는 게 신기하기도 해요. 얼마나 크신 은총인가요.

제 동생이 믿지 않으면 제가 옆에서 열심히 믿어주면 되겠지요. 우리가 모시는 성체는 예수님의 몸, 생명의 빵입니다.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니 이 빵을 모셔 예수님과 하나되면 우리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어둡고 힘든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꼭 필요하지 않나요. 사랑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작은 성체 하나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빛을 지킬... 뭇사람들의 눈에는 바보같이 보일 수도 있는, 그런 용기 있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는 너무나 필요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 이러한 면에서 인류가 비겁해진 결과, 삶에 끼친 피해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 '환상'이라고 하는 경험, 이른반 '영적 세계'라는 것, 죽음 등과 같이 우리와 아주 가까운 것들이, 예사로 얼버무리는 사이에 우리 삶에서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러는 사이 그런 것들을 느끼는 데 필요한 감각들은 모두 퇴화되고 만 것이다. 신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사랑합니다 :)


[4월 15일 (금) 부활 제3주간 금요일]
예수님께서 매일 갓구워 건네주시는 빵을 오감을 일깨워 곱씹고 맛보며 그맛을 잊어버리지 않기를 기도드립니다. 사랑합니다 ^^


행복합니다!

안그래도 이번주 예수님이 자꾸 빵타령(?)을 하셔서 묵상이 어려워지던 차! 오늘 마침 제가 엄청 맛있는 빵을 먹었어요. 서현동 사시는 분들은 아시겠죠. 앙무슨 카모 빵집이라고... 거기서 샌드위치를 사먹었는데 리코타치즈와 햄 치즈의 촉촉한 조화가 어찌나 맛나던지요. 오감이 행복했답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이 주신 생명의 빵은 이렇게 맛있게 받아 모셨던 적이 있던가? 아 맞다... 소싯적에 정인을 보내 놓고 나흘 밤낮을 식음전폐 하다가 평일 저녁미사에 받아 모신 성체가 그렇게나 달콤했던 기억이 있네요... 쿨럭...

예수님께서 요 며칠 자꾸 내 몸을 받아 먹고 내 피를 받아 마시라는 끔찍한 소리를 하시지만, 어쩔 도리 있나요?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아브라함을 본받아 그저 "까라면 까"야죠. 이왕 받아 먹고 마실 거, 아주 맛있고 야무지게 드십시다. 남들이 보고 저게 대체 뭐길래 저렇게 맛나게 먹나 궁금해할 만큼 잔치라도 벌인듯이 신명나게, 기쁘고 행복하게 드십시다.

한주일 모두 고생하셨어요.
무사한 밤, 평안한 밤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을 받아먹으면서 이 빵이 얼마나 귀한 것이고 얼마나 뜻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제가 이 빵을 먹을 수 있는것이 얼마나 기쁜일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또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제발 나았으면 좋겠는데 쉽게 낫지는 않습니다. 주님을 모시기에 부족하기 그지 없으나 주님께서는 당신을 모시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며 당신을 모시기를 오히려 바라주십니다. 구원의 역사는 이렇게 부족하지만 모시게되는 성체성혈의 신비로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한없이 신비롭고 감사할 뿐입니다.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모실 때마다 사울처럼 눈의 비늘이 떨어져 더욱 새로운 세상을 보고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멘


예전에 친구가 "사람은 빵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구절을 제게 적어 주었습니다. 당시에는 난 그래도 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말씀만 듣는다고 배부른 게 아닌데 어떻게 말씀만 듣습니까 하고 기도했습니다. 
요새 와서야 "사람은 빵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굶어 죽는 사람도 많은 세상에서, 전 배가 불러도 자주 불행해 합니다. 그럴 때 하느님께선 말씀으로 절 항상 살게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은 한 말씀으로도 절 살게 하실 수 있는 예수님께서 영원히 살라며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를 먹으라고 말씀하시네요. 
제 얕은 영성으론 다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인지 마음이 찡합니다. 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 한없이 선하신 하느님.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것은 너무도 많은데, 내 몸까지 먹으라 하시는데 전 얼마만큼이나 순종하는지, 얼마만큼이나 그 좋으신 마음을 믿고 의지하고 있는지 반성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제게 주시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일텐데, 제가 보기에 좋은 것을 안 주신다고 하루종일 땡깡을 부렸습니다.
사랑합니다.


[4월 16일(토)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세월호 2주기입니다. 재작년 세월호에서 마지막으로 보내온 카카오톡 메시지는 오전 10시 17분이었습니다. 배가 90도로 기울어져 침몰하던 때였습니다.

잊지 말아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 거북하고 듣기 힘들다고 외면하지 맙시다. 책임을 나눠 갖고 함께 슬퍼하고 유가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줍시다. 그들의 슬픔이 끝날 때까지요.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듯이요. 비겁한 방관자가 되지 않도록 주님께 용기를 청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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