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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게시판 Youth Board
로고스 매일복음묵상 [부활 제2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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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6.04.10

<규칙>
- 단톡방 안에서 매일복음과 묵상나눔 이외의 모든 사담은 금지입니다.
- 단톡방을 나가고 들어오는 것은 언제든 자유입니다.
분당성요한 청년이라면 누구든지 초대 가능합니다.
(로고스 대표봉사자에게 문의해주세요)


<로고스 매일복음묵상 나눔방입니다.>
1.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신 분께서 그날의 복음을 올려주세요.
2. 오늘의 복음을 마음에 새기며 하루를 알차게 보냅니다.
3. 하루 동안 복음을 통해 내 삶에서 드러나신 하느님을 자유롭게 나누어 주세요.
   (5문장 이상의 묵상으로 제한합니다. "사랑합니다"로 마무리해주세요.)
4. "행복합니다"는 마음속으로 답해주세요.





[4월 5일 (화)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오늘 주님의 말씀처럼..
저는 아직도 많이 모자란 저의 모습을 많이 보고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을 듣고도 제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깨닫지 못하는 저를, 부족한 저를 저의 의지가 아닌 하느님의 뜻으로 지켜주세요
여기모인 젊은이들을 주님의 품안에서 주님의 크신 사랑으로 지켜주세요..
사랑합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흡사 사도행전 2장의 "첫 신자들의 공동체 생활"이 떠오릅니다. 첫 신자들의 공동체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고,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고 합니다.

이 공동체는 필시 그리스도인들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동체가 아닌가 싶어요. 우리는 살면서 정말 많은 공동체에 속해있죠. 성당의 단체 뿐 아니라, 학교, 직장, 또래 공동체, 가정 등등... 우리 개개인은 모두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모상을 닮아가야 하는 "개별 교회"이지만 저부터가 학교에서, 직장에서, 또래 공동체에서 타인을 위해 기도하기 보다는 미워하고, 그 사람 안에서 하느님을 찾으려기 보다는 악을 집어내 지적을 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교회 공동체 내에서도 이렇게 되어가는 제 자신을 봅니다.

결국 이렇게 그리스도와 단절되어 가는 저나, 단절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들어 올려지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사순의 회개의 기간과 부활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화해하고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라고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믿고 토마스가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한 것처럼 하느님은 저의 주님으로 고백하며, 그분의 말씀을 제 삶의 중심에 놓는 것이겠지요. 그 시작은 이스라엘의 스승이라고 불린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인 니코데모가 자신의 자존심과 자만을 모두 다 내려놓고 예수님께 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눈 것처럼, 갈 길 찾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방황 중에 희망을 갖고 그분을 찾아가 "위로 부터 다시 태어나는" 데서부터, 즉 부활하는데서 시작이 되겠지요.

부활은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추구하고 변해가야 할 연속성있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요. 부활절의 감사함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제 주변과 한마음 한뜻이 되고, 하느님과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기를 청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멘.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요한 3,8)

오늘 온전한 평화는 오로지 하느님에게서만 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세운 평화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 하루아침에 깨질 수 있는 나약한 것인지요. 내 안에 예수님께서 정말 부활하셨다고 자만하는 순간 또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하는 것이 저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하느님을 붙잡고 살아야 하나 봅니다. 하느님의 섭리에 따르고 하느님께 순명하고 전부 다 내어맡길 때 비로소 그분의 자유로움도 얻을 수 있다는, 어찌보면 인간의 눈으로는 참 모순된 진리이지요.
하느님께 전부 다 내어 맡기고 싶습니다. 저는 전부 다 지워야합니다. 제가 움켜쥔 것을 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숨결이 제게 자유를 주시리라.바람같은 자유를 주시리라...
말씀 안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매일복음 나눔방이 번창하기를 청하며 기도합니다.

"행복한 날에는 행복하게 지내라. 불행한 날에는, 이 또한 행복한 날처럼 하느님께서 만드셨음을 생각하여라.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인간은 알지 못한다." (코헬렛 7:14)

사랑합니다. :)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하느님으로부터 영을 받아 이세상에 보내진 저희들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저희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시고 저희의 길을 비춰주시는 주님..비록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바로 깨닫지 못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한걸음 한걸음 하루 하루 살아가기를 기도드립니다




[4월 6일 (수) 부활 제2주관 수요일]

살면서 나는 악을 행하고 빛을 미워하지 않는지 생각해봅니다. 사실 그게 빛인지 악인지도 잘 구분이 안갑니다. 항상 주님 안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사랑합니다❤



심판자를 심판을 두려워 하는 이유는 내 마음이 어둠에 악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악과 빛의 줄다리기에서 어둠쪽에 있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또한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심판을 심판자를 두려워합니다. 빛 가운데서 머물며 빛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빛이라는 줄을 잡아 당깁시다. 빛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나 자신의 선한 마음 속에, 나의 의지에 녹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오늘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라는 구절이 마음에 콕 박히었습니다.
장애인센터에서 정기적으로 봉사를 할 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누군가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장애인분들의 태연함이었습니다. 그분들의 삶은 하루 24시간을 꼬박 누군가의 사랑의 손길이 끊임없이 필요합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일'이 그분들의 삶에서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크나큰 실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 받는 일을 엄청나게 미안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어디서 사랑의 기쁨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하느님의 사랑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기꺼이, 기쁘게 주신 사랑을 받아들여야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저는 악과 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사람은 영원히 살것같이 현재를 보내게됩니다. 언제나처럼 매끼니와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맡은일을 하고 함께 그렇게 살아갑니다.
죄를 짓는다는 것,
예전의 저는 '내가 무슨죄가 있어서 나 정도면 충분히 죄짓지 않고 착하게 사는거지' 라는 생각으로 지내왔습니다. 하지만 영성생활을 하면서 특히 고해성사를 드리며 느끼게된것은 일상중 제가 모르고 짓고있는죄가 나 자신이 전부 다 기억하지 못할정도로 많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에선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라는 구절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저는 행복할땐 주님을 찾지않았습니다. 슬플때도 주님을 찾지않았습니다.
단한번도 기도를 드리지않았습니다.
저는 사람의 아들을 믿지 않은 심판을 받은자였습니다. 
저는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그런 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슬퍼하고 계셨던걸 깨달았을땐 아무생각도 할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에선
악인을 심판하기위함이 아닌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어 외아들을 내주시어 구원을 받게하십니다.
하느님께선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 않으시며 계속하여 말씀해주십니다.
사랑한다고 말씀해주십니다.
사랑합니다.



사도들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박해한 것처럼 대사제와 사두가이파에 의해 공영감옥에 갇힙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하느님께서는 도와주셨고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어주고 세상에 "생명의 말씀을" 모두에게 전하라고 합니다. 감옥에서 나온 사도들은 겁을 먹기는 커녕 주님의 천사로부터 더 큰 용기를 얻었는지 꿋꿋하게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겠다고 하지만 사도들처럼 꿋꿋하게 그 말씀을 따르기 보다는, 유다인들이 빛보다 어둠을 사랑한 것처럼 저도 제 자신을 심판하고 다른이들을 심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지만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하느님의 나라로 나아가느냐, 심판을 받느냐는 모두 제 자신에게 달린 것 같아요."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오셨"으니 그 빛이 설령 저에게 너무나도 눈 부실지언정, 그 빛을 피하지 않고 제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리고 주님의 빛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제가 되기를 청합니다. 빛은 나의 모든 것을 밝혀줄 뿐 아니라 내 앞길도 밝혀주기 때문이죠.

사랑합니다.
아멘.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악을 섬기는 이는 빛으로부터 도망치고 진리를 찾는 이는 빛을 향해 나아갑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양심을 주시어 우리가 저의 죄를 스스로 드러나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잘못을 저지르면 움츠러들고 숨으려하는 태도가 어둠에 익숙해지면 어느새 그 양심마저 물들이고 맙니다..건강한 양심과 빛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선행을 했을 때 조차 내가 한일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맡겨진 일에 대한 부담 때문에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리기 힘든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 말씀이 힘이 되어 우울하고 어두운 감정에서 벗어나 빛으로 나아갈려고 애를 썼던 하루이기도 합니다. 아직 많이 흔들리지만 조금씩 나아지리라 기대해봅니다. 사랑합니다 ^^





[4월 7일 (목) 성 요한 밥티스타 드 라 살 사제 기념일]

오늘은 세월호참사 2주기를 맞는 날입니다. 하느님의 오늘 말씀에서 어린이라는 단어가 더욱 가슴에 간절하게 새겨지는것은 단순히 우연일까요..

오늘 하느님말씀에선
대사제는 베드로와 사도들을 심문하는 장면에서 저는 뒤늦게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린 베드로와 사제들의 모습을 보며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않고서도 믿는이는 행복하다 하시는 말씀이 가슴에 깊게 새겨집니다.

누군가 저에게 그분을 본적이 있습니까? 라고 질문한다면 저는 선뜻대답을 못할것같습니다. 주님을 뵙기에 너무 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며 닳고닳아져 감정마져 매마르고 악이 저희를 유혹할때
어린아이같아 질수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주님의 사랑에 흠뻑젖을수 있기를 청합니다.
의인도 악인도 모두 아버지의 사랑으로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오늘 지인 중에 교회다니시는 분에게 전도(?)를 받았는데요. 저는 과연 그리스도인인가 반성을 많이하게되었습니다. 난 주님을 제대로 믿고있는것인가 의문이 들더라구요. 주님과 이야기할 시간도 내지 않고 다른 잡다한 일에만 몰두하고 말이죠. 오늘 이렇게 반성을 했는데 내일의 나는 어떨까요 변함이 없다면 너무나 슬플것같습니다. 조금씩 변해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것으로 가득차 살고자 합니다.
모두 행복한 밤 되세요. 여러분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랑합니다❤



오늘 우연히 읽은 테살로니카 1서 4장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더러움 속에서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살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아마 저한테 저 말씀이 걸린 이유는 "부활한 삶을 살라"는 부활시기의 핵심과도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1독서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 증언을 받아들여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합니다. 지상에서는 비록 고통을 받을지언정 사도들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갖고 하느님의 말씀을,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전합니다. 나는 과연 하느님께 얼마나 순종하며 얼마나 거룩한 삶을 살고 있는가... 오늘 테살로니카서를 읽고 나누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거룩해지는 것은 뼈를 깎는 일보다도 어렵지만 더러워 지는 것은 정말 한순간인 것 같다"라고 말한 것처럼, 하느님에게,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은 머리로 이해하면 정말 쉽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는 뼈를 깎는 것처럼 어렵고 하느님과 그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정말 순식간에, 쉽게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고 합니다. 아드님을 통해 모든 것을 말씀하셨고 모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제가 하느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만큼 그분 손에 내어준 모든 것을 믿고, 그분의 증언을 듣고 더욱 더 순종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청합니다.


더불어 오늘 세월호 참사 2주기 미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많은 이들이 이 시대의 예수님과 같은 표징으로 계속 세상의 불의를 경고할 뿐 아니라 빛나는 그분 품 안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오늘 새벽 돌아가신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아버님이신 전경배 베드로님께서도 하느님 안에서 안식을 취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멘.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우리는 이번 4.13 총선거를 통하여
진리와 정의를 짓누르는 세력,
유가족의 상처를 덧내려는 세력,
생명이 아니라 죽음의 문화양산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세력을 무력화 하는 데
우리 각자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것을 다짐한다!"

세월호 추모미사 중 수원교구 사제단의 성명 중 일부를 인용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눈물 흘리고 기억을 다짐하였습니다.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슬퍼합시다.

사랑합니다 :)





[4월 8일 (금) 부활 제2주간 금요일]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릅니다. 군중들은 사도들과 달리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온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흡사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오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교회는 말씀을 찾아, 구원을 찾아와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용기나 위로, 목적이 무엇이던간에 사람들은 하느님을,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렇게 오는 군중들을 내치지 않으시고 갖고 있는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들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신 다음 모두에게 나누어주십니다. 흡사 미사에 찾아오는 우리들에게 말씀이 전해지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우리가 미사를 정성껏 봉헌하던, 멍때리고 앉아있던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 들어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차츰 변화하고 부활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부활의 삶에서 기쁨을 느꼈기에 사도행전에서처럼 사도들이 고난을 받으면서도 예수님과 같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씀을 전파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12명의 사도가 빵과 물고기를 전달하고, 전달 받은 사람들이 또 다른 빵과 물고기를 전하는, 마치 공관복음에서의 겨자씨처럼 퍼져나가는 것처럼 말이죠.


느껴지는 공통점은 감사함, 순명인 것 같아요.

조금 더 감사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를 청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멘.



저는 빵을 내놓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빵과 물고기를 가졌던 아이라면 예수님께서 끝까지 나눠 주실 때까지 불안했을 겁니다. 내가 먹을 몫이 없으면 어떡하지? 저는 오늘도 많은 사람을 질투했고 미워했고 화도 냈습니다. 부족할까봐 안절부절 못하며 남이 가져가면 제 몫이 줄어들까 기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제게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나눠주시는 빵은 먹고 남은 것을 모아도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찰 것이라는 믿음을 허락해 주셔서 제가 마음의 평화를 얻도록 도와주세요. 사랑합니다. 아멘.



우리는 인류를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마더데레사의 말입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내어 놓으면 하느님께서 크게 돌려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이 방식이 저는 너무나 와닿아서 주유구에 "Do small things with great love"라는 문구를 갖다 붙였답니다.
다만 그 모든 일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영광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아야합니다. 저는 성당일로 바빠지면서 혼자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위기감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이 문장에 특별히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홀로 기도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겠습니다. 여럿을 먹이고 살린 기적이 내가 한 일이 아닙니다. 일을 하기 전에는 늘 하느님께 먼저 청하고, 돌아온 것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돌리고, 나쁘게 돌아오더라도 부족한 내게는 감사하다고 여겨야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4월 9일 (토) 부활 제2주간 토요일]

어제 복음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혼자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녁 때가 되자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 조조로 영화 부활을 보았습니다. 영화 속에는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만든 논리와 이성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든 허상이 내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늘 물러나서 홀로 기도하셨던 예수님처럼 계속 부단히 기도하고 잠잠히 하느님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합니다 :)



오늘 복음말씀에서는 거친파도의 바다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시는 장면을 묵상해봅니다.
거친파도위의 제자들의 모습은 마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같기도 합니다.
호수위를 걸어오셔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말씀하시며 가려던곳으로 무사히 지켜주십니다. 
저는 호수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문득 저 자신의 모습도 볼수있었습니다. 믿을수가 없어했던 자기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던 제자들의 모습이었던것 같습니다.
현재의 시대에는 문명과 과학의 발달로 그리고 많은 지식들로 상식적으로 설명할수 없는 일들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일들에 대하여 많은 현상에 대하여 연구를하고 정의를 내리기도합니다. 결과는 사람들과 또 학자들이 긴 시간 연구하고 생각하며 만들어낸 지식입니다.
이 모든 과정들 속에서 우리들이알게되는 것들과 느끼는것들 또한 하느님께서 의도하신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세상엔 눈에 보이는것들과 보이지 않는것이 공존하고 있는것같습니다.
인간의 죄와 악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물위를 걸어오시는 모습을 다시 한번 묵상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직도 제 눈을 의심하고 있는 저의 모습도 바라봅니다.
의심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기를 청합니다.
 저의 능력과 의지가 아닌 하느님의 은총으로 인간의 것들에 눈이 멀지않고 죄의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며, 악에서 구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잠시의 기도가 아닌 매시간 매순간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 기도안에 저희가 있을수있기를 청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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